[] 시사매거진 칼럼 [김광웅의 법률산책 - 이혼합의서 작성했는데 약속을 안 지켜요. 강제집행 가능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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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율민 작성일25-06-1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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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할 때 위자료, 재산분할, 양육비를 포함한 이혼합의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이혼 후 상대방과 연락이 끊기고, 약속한 돈도 전혀 지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합의가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건가요?”이는 필자가 실제 상담에서 자주 접하는 질문이다. 협의이혼을 준비하는 부부들 중 상당수는 ‘좋게 마무리하자’는 취지로 재산분할, 위자료, 양육비 등을 문서로 정리해두지만, 이 문서가 실제로 법적 구속력을 갖는지 여부는 이혼 후 분쟁에서 중요한 갈림길이 된다. 특히 상대방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며 “그건 형편 봐서 준다고 한 것일 뿐”이라 주장하는 경우, 해당 문서가 단순한 사적 합의인지, 강제집행 가능한 법적 문서인지에 따라 대응 방식과 권리 회복 가능성은 크게 달라진다.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파주시 운정에 거주하는 A씨는 남편의 부정행위와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이유로 협의이혼 하였고, 이와 별도로 상간녀를 상대로 상간소송도 제기하였다. 협의이혼 당시, 위자료 3천만 원과 매월 양육비 100만 원, 재산분할로 고양시 일산소재 아파트 및 김포시 상가를 A씨가 소유하기로 하는 내용을 포함한 이혼 합의서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협의이혼이 성립된 직후, 남편은 돌연 연락을 끊고 사실상 잠적하였다. A씨는 뒤늦게 이혼전문 변호사를 통해 해당 합의서가 법원의 확인을 거치지 않은 이상, 단순한 사적 합의문에 불과하여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A씨는 약속된 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다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협의이혼 과정에서 이루어진 위자료·재산분할·양육비 등에 관한 합의를 공적 절차를 통해 강제력이 있는 형식으로 남겨야 한다. 가장 일반적이고 강력한 방식은 가정법원의 확인 아래 조정조서 또는 재판상 화해조서를 작성하는 방법이다. 조정조서나 화해조서는 민사소송법상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므로, 상대방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강제집행을 신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매우 크다.
또 다른 방법은 공정증서 작성이다. 공증사무소를 통해 ‘집행력 있는 공정증서’를 작성해두면, 추후 별도의 소송 없이도 바로 집행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이 방식은 특히 금전으로 지급되는 재산분할이나 정기적 지급이 예정된 양육비 등의 항목에 적합하며, 이후의 증거력 다툼을 방지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단순히 인감도장을 날인하고 자필로 작성한 합의서는 법적 구속력이 매우 제한적이다. 실무상 법원은 이와 같은 문서를 당사자 간 합의 의사가 있었다는 정황적 증거로는 인정하더라도, 이를 집행권원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해당 문서만으로는 강제집행을 할 수 없다. 결국 이러한 문서를 근거로 약속된 금전이나 재산을 회수하려면 별도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하며, 이로 인해 시간과 비용이 이중으로 소모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협의이혼 과정에서 많은 경우 당사자들은 ‘이혼신고서’에만 집중하고 정작 재산분할, 위자료, 양육비 등의 조정 여부에 관한 사항은 별도로 정리하지 않거나 법원의 확인을 받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러한 경우, 가정법원은 당사자의 이혼 의사 확인만을 절차적으로 진행할 뿐, 금전적 약속에 대해서는 조서나 결정문을 통해 별도의 확인이나 명시를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금전 지급을 포함한 실질적 권리 보호를 위해서는 해당 합의 내용이 법적으로 강제력이 있는 방식으로 정리되어야 하며, 조정조서 또는 공정증서 등 집행 가능한 형식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협의이혼은 그 절차가 간단하고 신속하다는 점에서 많은 부부가 선택하는 방식이나, 바로 그 간소함 때문에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가 생기기 쉽다. 감정적으로는 합의가 이루어진 듯 보이더라도, 이혼 성립 이후 상대방이 마음을 바꾸거나 연락을 끊게 되면, 다시 소송을 제기하여야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협의이혼을 준비 중이라면, 이혼 전 단계에서 합의 내용의 문서화 방식과 법적 형식을 신중하게 검토하여야 하며, 가능하다면 이혼 전문 변호사의 자문을 통해 집행 가능한 구조로 합의서를 작성할 것을 추천한다.
필자도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이혼이라는 큰 결정을 내릴 만큼 마음을 다했는데, 그 마지막 한 장의 종이에는 왜 그렇게 마음을 놓아버리는 걸까. 서로를 향한 감정은 끝났지만, 아이의 양육비도, 위자료도, 재산분할도 모두 여전히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약속인데 말이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책임이고, 그 책임은 말이 아니라 법이 지켜줄 수 있는 형식 안에 담겨야 한다. 그래야 누군가가 연락을 끊고 돌아서더라도, 최소한 약속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 하루,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둔 합의서를 꺼내 다시 펼쳐보자.
그 문장 하나하나에, 단지 금액이 아니라 함께했던 날들의 무게가 적혀 있을지도 모르니까.
박희남 기자 dlghsdldirl@naver.com
출처 : 시사매거진(https://www.sisamagazi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