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매거진 칼럼 [김광웅의 법률산책 - 혼인 중에 받은 부모님 증여금,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 대상일까?]
페이지 정보
법률사무소율민 작성일25-08-11관련링크
본문
“신혼집 전세 보증금은 전부 제 친정에서 받은 돈이에요. 그런데 이혼한다고 그걸 반으로 나눠야 하나요?”이혼 소송 상담을 하다 보면, 많은 분들이 가장 억울해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 문제이다. 부모님이 딸이나 아들을 위해 도와준 돈인데, 단지 혼인기간 중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배우자와 절반씩 나눠야 한다는 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반면, 상대 배우자는 “혼인 중 받은 돈이니까 공동재산 아니냐”고 맞선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걸까?
사례를 보자.
고양시 일산에 거주하는 A씨는 결혼 2년 차에, 김포시에 사는 친정 부모로부터 파주시 운정 아파트를 매각한 대금 중 1억 5천만 원을 지원받아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명의는 남편 앞으로 했고, 자녀 출산 이후 A씨는 전업주부로 가사와 육아에 전념해 왔다. 그런데 결혼 10년 만에 이혼소송이 시작되자, 남편은 해당 전세보증금도 재산분할 대상이라고 주장했고, A씨는 “부모님이 나를 위해 준 돈인데 왜 남편 몫까지 줘야하느냐”며 반발했다.
이처럼 혼인 중 부모로부터 받은 재산이 재산분할 대상이 되는지는 이혼소송에서 매우 자주 다뤄지는 쟁점이다. 핵심은 그 돈이 ‘특유재산’인지, 아니면 부부의 ‘공동재산’으로 봐야 할지를 가리는 데 있다.
민법은 원칙적으로 특유재산은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정하고 있다. 특유재산이란, 혼인 전부터 보유하고 있었거나, 혼인 중에 단독으로 상속 또는 증여받은 재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모님에게서 증여받은 돈은 원칙적으로는 증여받은 사람의 특유재산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증여금이 부부 공동생활의 기반으로 사용되었거나, 그 특유성이 희미해진 경우에는 가정법원이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관건은 “누구에게, 어떤 명목으로, 어떻게 사용되었는가”이다. A씨 사례처럼, 부모가 자녀에게 준 돈이라 해도 부부 공동명의로 주택을 매수하거나 가족이 함께 거주하는 전세 계약에 사용되었다면, 가정법원은 그 자금이 부부 공동생활의 기반으로 기능한 것으로 보고, 전부 또는 일부를 분할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특히 상대 배우자가 해당 자금을 전제로 가족을 위해 경제적 기여나 희생을 감수했다면, 그 기여도는 분할비율에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특유재산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첫째, 증여의 의사와 범위를 명확히 문서화한 경우이다. 예컨대 “이 돈은 딸의 혼수자금으로 준다”는 내용이 서면이나 메시지로 남아 있다면, 법원은 이를 단독재산으로 인정할 수 있다. 둘째, 부부 재산과 명확히 분리되어 관리된 경우이다. 자녀 명의의 통장에만 보관되고, 부부의 공동생활에 사용되지 않았다면, 재산분할 대상이 되기 어렵다.
실무에서는 증여의 의도, 사용 방식, 가계 자금과의 혼합 여부, 명의 및 관리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단순히 “부모가 준 돈이다”라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며, 구체적인 사용 내역과 증여 경위에 대한 입증이 요구된다. A씨 사례에서 전세보증금 계약이 남편 명의로 되어 있고, 해당 자금이 부부의 생활 기반으로 쓰였으며, 이후 남편 역시 전세 연장과 가계 유지에 관여해 왔다면, 가정법원은 보증금 전액을 공동재산으로 보고 양측의 기여도에 따라 재산분할을 명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A씨 측의 친정 자금 기여를 인정해, 그녀의 기여도를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할 여지가 있다.
혼인 중 이루어지는 증여는 종종 경계가 모호하다. 부모는 자녀를 돕는 마음에서 준 것이고, 자녀는 그 돈을 부부 생활에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다. 그렇게 생활 속에 녹아든 돈은, 이혼 과정에서는 '공동재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제로 떠오른다. 결국 중요한 건 감정이 아니라 입증이다. 따라서 부모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을 예정이라면, 그 자금의 증여 취지와 사용 목적, 수증자의 단독 명의로 관리되고 있는지 여부 등을 미리 문서로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준비가 없다면, 이혼 시 예상치 못하게 해당 자금의 절반을 나눠줘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장래의 분쟁 가능성에 대비해, 사전에 이혼전문변호사와 상담을 받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사랑은 둘이서 하지만, 돈 문제는 법이 따진다. 그 돈이 누구의 것이냐는 질문 앞에서, 감정은 근거가 될 수 없다. 내 자식 잘 살라고 도와준 돈이, 나중엔 사위나 며느리 몫으로 반이 나눠질 수 있다는 사실, 생각보다 흔하고, 생각보다 억울하다. 결국 혼인 중 받은 증여금은 ‘받은 사람의 몫’이 아니라 ‘어떻게 사용됐는지’가 핵심이다.
신현희 기자 bb-75@sisamagazine.co.kr
출처 : 시사매거진(https://www.sisamagazine.co.kr)